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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로 떠난 여행 ①] 원주시 지장면 흥법사터
답사의 초급자는 어디에 가든 무엇하나 놓치지 않을 성심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며 골똘히 살피고 알아먹기 힘든 안내문도 참을성을 갖고 꼼꼼히 읽어간다. 그러나 중급의 답사객은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는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곳에서 보았던 비슷한 유물을 연상해내어 상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곧잘 비교해보곤 한다. (중략) 그러나 고급의 경지에 다다른 답사객은 얼핏 보기에 답사에의 열정과 성심이 식은 듯 돌아다니기보다는 눌러앉기를 좋아하고 많이 보기 보다는 오래 보기를 원한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제1권 217쪽 중에서
단순히 취향의 문제를 벗어나 역사유적답사에 대한 최초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유홍준 교수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였고, 학창시설 역사도시연구라는 명목으로 전주, 경주, 순천, 진주 등 도시를 돌아다녔던 것이 그것을 직접 경험케 해 준 것이었다면, 이제 나름의 기호가 생겨나 찾아가고, 보고, 느끼고 하는 것을 하나의 큰 즐거움으로 와닿게 해 준 것이 - 비록 그 명칭은 수수하기 짝이 없더라도 - 한국문화유산답사회에서 엮은 『답사여행의 길잡이』란 15권의 책이다.
각 지역별로 구분된 이 책의 전질을 모두 사진 못했지만, 흥미가 가는 데로, 관심이 모이는 데로 사고 모으고 한 것이, 전북편, 경주편, 동해․설악편, 충남편, 경기남부와 남한강편, 팔공산자락편, 경기북부와 북한강편, 한려수도와 제주도편, 그리고 가장 최근 발간된 서울편이다.
어느 지역을 답사하든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이들로서, 『경주』편은 몇 해 전 남산답사 때 열심히 그어놓은 형광펜 자국이 이제야 좀 바래졌고, 작년 이맘 여주 신륵사와 고달사터 답사때 비에 젖어 쭈글쭈글 해진『경기남부와 남한강』편은 여전히 그대로여서 우중충한 날씨 덕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원종대사 부도비의 모습을 선연케 하고 있다.
폐사지 여행은 희서를 낳고 두 달만에 부랴부랴 회사에 복직을 하면서 모든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나랑 상관없이 더디기만 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 사람을 늘상 지배하고 위협하고 당황스럽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기에,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간은 자유롭고 싶은 방편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더불어 역사라 하면 다분히 추상적이고 어려운 것이데, 그 흔적으로서 역사유적이라는 것은 제 나름의 향할 대상이 있어, 그 중에서도 나는 이미 무너진 것과 돌과, 돌에 새긴 마음과 돌로 쌓은 것 중에 가장 으뜸으로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폐사지의 삼층석탑인 까닭이다.
답사코스는 역시 『답사여행의 길잡이-경기남부와 남한강』편을 참조하였고,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원주 일대 옛 절터 중 흥법사터~법천사터~거돈사터를 찾아 2009년 4월 12일, 나의 든든한 벗 애기아빠와 함께 다녀왔다.
 photo by hime 낮은 언덕 위에 위치한 흥법사지를 찾아 가는 길.
 photo by hime 진공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 부도비는 크게 아래쪽 거북이 같이 생긴 귀부와 중간에 비문이 씌여진 비신, 그리고 이수라고 해서 맨 꼭대기 얹혀지는 것인데 아무래도 오랜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길다랗고 가는 비신 부분은 파손되고 저렇게 귀부와 이수만 남은 것이 많다.
 photo by hime 유홍준교수의 구분대로라면 답사의 중급쯤 되는 나로서는 안내문을 대충이라도 한번쯤은 읽어보는 쪽이다.
 photo by hime 흥법사지 삼층석탑과 느티나무와 나물캐는 아주머니 전경
 photo by hime 흥법사지 삼층석탑
 photo by hime 뒤에 나올 거돈사터 느티나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초라하고 스산한 흥법사지를 아늑하게 감싸주는 듯.
 photo by hime 흥법사지 삼청석탑 풍경
 photo by hime 흥법사지 삼층석탑과 뒤로 보이는 영봉산과 그림같던 시골집
  photo by hime 석축 일부에 과거 흥법사의 한 부속물이었을 돌무더기 있다.
    photo by hime 그리 볼품있는 것은 아니어도 나는 이런 삼층석탑이 참 좋다.
   
photo by hime 주변이 모두 밭으로 개간되어 어찌보면 누가 보러오기나 할까 하지만, 그런 염려와는 아랑곳 없이 삼층석탑과, 진공대사의 넋을 기린 부도비는 지난 천년의 세월만큼 앞으로도 이곳에 남게 될 것이다. 무슨 상관이랴. 사람은 이미 다 지나간 것을.
// 계 속 //
*** 흥법사터, 법천사터, 거돈사터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과 비슷비슷한 이름으로 늘 헤깔리게 하는 - 심지어 차 안에서 애기아빠와 이름외우기 내기까지 하게 만드신 - 이 폐사지들의 주인공인 진공대사, 지광국사, 원공국사(인근의 여주 고달사지의 주인공은 원종대사임.)에 대한 설명까지 먼저 소개한 책 "답사여행의 길잡이-경기남부와 남한강"편을 참조바람.
걷고 싶은 시민연대 <도시연대> 기고글 (2009/3-4) [히메의 서울이야기] ... 살고싶은 곳으로서의 도시 종로구 부암동 일대
사실 사람이 “사는 곳”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니 그것이 너무 애매모호하다면 적어도 무시하지 못할 그런 것,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육체적으로는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으로는 보다 “실리”적이며, 그리고 정서적으로는, 육체적인 편리와 경제적인 실리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사람의 “사는 곳”에 대한 문제는 무엇보다 개인적이고 복잡스런 까닭에 그 속사정을 면면이 살펴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지만, 이미 태어난 곳, 자란 곳으로서 고향의 이미지가 부재하는 우리 세대들에게 정서적인 “만족감” 보다 깊은 “애정”을 바란다면 그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서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애증의 도시 서울에서 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종로구 부암동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고 갈 적마다 느껴지는 동네의 아름다움과 한적함, 여유는 - 비록 그렇게 비춰지는 것일 뿐일지라도 - 여러 가지 현실적인 “만족감”에 의해 잠실에서 한 뼘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어느 이른 봄날이 아니더라도 부암동 나들이의 시작이자 끝은 언제나 부암동사무소 앞 버스정거장이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갈아 탄 버스가 느릿느릿 자하문 터널을 지나 곧 부암동사무소 앞에 서면, 때 이르게 핀 것도, 더 샛노랗다 할 것도 없는 개나리꽃이 무척 반가워진다. 정거장 앞 벤치는 분명 이곳 어딘가 살고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겨울보다 따뜻해진 봄볕에 몸을 맡기기 안성맞춤이다.
 photo by hime 부암동사무소 앞 버스정거장 간혹 예전부터 낯선 부암동을 찾게 했던 환기미술관이라던가, 손만두집이라던가, 백사실계곡과 같은 명소들은 둘째 치더라도, 이 동네의 분위기는 몇 해를 지나는 동안 크게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이지만,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면 별 수고랄 것도 없이 부암동 여기저기에서 아주 작고 앙증맞은 변화의 몇 개를 찾아볼 수도 있다.
 photo by hime 부암동 일대 (배경의 산은 백악산)
우선 부암동사무소 아래쪽으로 고만고만한 갤러리와 까페가 생겼고, 특히 서울성곽 코스가 시작되거나 끝나는 창의문(자하문) 근처로 파스타나 피자, 진한 원두커피를 파는 가게들이 가가호호 들어선 것이다. 아마도 서울성곽을 따라 기막힌 풍경들을 쉴새 없이 구경한 사람들이 제법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아픈 다리를 쉬어 줄 찻집과 출출한 배를 채워줄 식당들이었나 보다.
 photo by hime 부암동 일대의 새로운 변화
부암동사무소 바로 옆 골목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적한 골목사이로 작은 공방을 겸하는 까페들이 하나둘 생기고, 평소에는 그저 폐허로 남았을 무계정사(武溪精舍)나 반계 윤응렬 별서 등이 새로운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두드리고 있다. 무언가 볼만한 것, 또는 본적 없는 것, 그래서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누군가와 하나쯤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이 한적한 동네 안으로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멘 동호인들이나 연인들을 부지런히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photo by hime 부암동 골목을 걷는 연인들(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살고 싶은 곳”으로서 부암동에 대한 매력을 늘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작은 변화가 사실 반갑지만은 않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두번 나들이 하듯 드나드는 나 역시도 어쩌면 이곳에 오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외지인에 불과하겠지만, 한편으로 슬슬 “제2의 삼청동”이라 불리며 인터넷 곳곳에 부암동의 찻집, 갤러리, 명소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어찌됐든 나 역시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셈 아닌가.)을 보고 있노라면, 몇 년 후 이곳이 예의 그 한적함과 여유를 잃고 주말마다 찾아오는 외지인들로 북적북적 대는 모습을 결코 유쾌하지 않은 모습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hoto by hime 여기 부암동을 부암동답게 해주는 것들...폐허와도 같은 <무계정사> 전경
 photo by hime 무계정사 난간에서 본 백악산(조각은 조악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어설픈 손맛에서 우러나는 정감이 아주 없지만도 않다.)
 photo by hime 바위 곳곳에 각자(刻字)된 모습 (靑溪洞天)
 photo by hime 반계 윤웅렬家 앞마당의 은행나무
사람들은 부암동 같은 곳에 오면 한결같이 “서울 같지 않다”고들 한다. 한때는 역시 서울답지 않았던 북촌이나 인사동 같은 곳들이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어떤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그와 더불어 삼청동, 효자동 같이 한적했던 동네들도 까페다, 갤러리다, 음식점이다 하여 제법 시끌시끌해진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죄다 서울 같지 않은 것에 대한 애정이 얼마쯤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어쩌면 살고 싶은 곳, 적어도 자기가 지금 사는 곳과는 다른 곳에 대한 애정의 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살 수는 없지만,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좀 낡았지만 이른 봄빛이 쏟아지는 단층집, 그 집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이름 모를 덩굴들, 비록 매일 아침 출근길을 함께 할 수 없지만,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그 골목길에 깔린 울퉁불퉁한 돌멩이, 비록 매일매일 볼 수 없지만, 이 동네를 에워싼 산과 언덕, 나무와 바람….
 
photo by hime 부암동의 고즈넉한 골목과 풍경
숨을 고르며 골목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인왕산 턱 아래 자하미술관이다. 미술관 앞 공터에 서니 고생스러운 발걸음이 무색하도록 부암동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북한산의 능선, 정면으로 백악산과 그 위에 실타래처럼 놓인 서울성곽, 그리고 움푹 패인 산자락 사이사이마다 올망졸망 집들이 놓여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뻔히 보이는 현실적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살아 보고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photo by hime 자하미술관에서 바라본 부암동 전경
// 마 침 //
[hime's story] ... 육아(育兒)의 세계 (1)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흔히 얼룩말이나 버팔로, 톰슨가젤과 같은 초식동물이 자주 나온다. 이들은 - 버팔로처럼 다소 육중한 것들은 좀 예외로 두더라도 - 주로 초원을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또는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천적들을 피해 늘 두려움과 경계심 가득한 눈길로 세렝게티 초원을 종종거리는 약자들이다.
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곧잘 사라지기 - 먹히기 - 때문에, 갓 태어난 새끼들은 아직 털가죽을 적신 양수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연약하다 못해 부러질 듯한 다리로 비틀비틀 걷다가는, 도처에 산재한 위험을 피해 초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곤 한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고 하는 것은「동물의 왕국」에서는 단순히 사는 문제를 떠나 살아 남는냐의 문제, 즉 생존과 관여된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나는 다소간의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생존의 문제는 아프리카 초원에서뿐 아니라, 생태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슨 도마뱀인지 뭔지는 부화하자마자 물속에 뛰어들어 먹이를 잡고, 갈라파고스의 무슨 거북이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망망대해로 뛰어들어 - 정확히 느릿느릿 움직여서 - 헤엄치며, 비교적 어미에 의한 보살핌의 기간이 길다고 알려진 곰이나 코끼리조차 4~5년 후면 독립된 개체로서 생활한다.
오직 인간의 자식들만이 법적으로만 20여년 - 경우에 따라 펴~엉생 - 의 시간 동안 갖가지 형태의 정성과 보살핌으로 양육되어지니, 이러한 동물의 세계와 비교하면 인간의 육아환경이 동물들의 위협적인 그것과 달리 지나치게 안정된 탓일까. (요즘 뉴스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희서가 태어난 지 꼭 두 달이 되었다. 세렝게티의 톰슨가젤처럼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고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젠 눈도 맞추고, 소리 나는 데로 고개도 돌리고, 축 늘어졌던 목도 제법 가눈다. 방문 여닫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고, 어느 날은 제 엄지손가락을 쭉쭉 빨아대며 제 나름의 스트레스까지 풀고 있다. 법적으로 이 아이에 대한 육아의 의무는 아직도 19년 10개월 정도 남은 셈이지만, 나로서는 동물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길고 긴 - 더구나 훨씬 더 복잡하고, 상대적이며, 미묘한 - 육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하지만 인터넷 등을 떠도는 온갖 육아정보와, 부모의 능력과 열성에 의해 좌우되는 육아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의 육아의 세계가 과연 세렝게티의 그것보다 위협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세렝게티의 어느 톰슨가젤처럼 초원을 향해 흔들림 없이 뛰어갈 수 있을까. 사실은 그것 또한 의문스럽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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